재미있는 항공상식

비행

6시간 기내 대기? 왜 일찍 운항취소 결정 안해?

  • 제설/제빙작업은 안전을 위한 필수사항

  • 운항여부 신속 결정 못하는 이유, 예보능력?

  • 법적으로 가이드라인 마련할 때,

어제(23일)부터 제주 지역에는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다.

제주라는 지역이 워낙 따뜻한 곳이라 한 겨울에도 한라산을 제외하고는 눈 보기란 쉽지 않은 곳이다. 한 겨울에 1-2번 눈이 올까 말까 할 정도로 눈과는 거리가 먼 동네다.

하지만 어제 내린 눈은 14cm 에 가까운 양으로 제주 지역으로는 폭설이라고 느낄만한 양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공항 이착륙을 위해 공항, 항공기 제설작업 때문에 수시간 기다리다 몇몇 항공기는 이륙하기도 했지만, 활주로가 눈에 쌓여 동결되고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게 되면서 대부분 항공편 출발이 취소되고 급기야는 공항이 오늘(24일)까지 전면 폐쇄되어 항공기 운항이 금지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기내에 탑승한 채 수시간(보도상으로는 최장 6시간) 하염없이 기다리는 사태까지 다수 발생했다. 

이런 상황이 알려지자 적지않은 네티즌들은 '어떻게 기내에 그렇게 오랫동안 잡아두고 기다리게 할 수 있느냐', '비인간적인 처사다', '해결책을 내지 못하는 공항과 항공사는 책임져야 한다' 며 공분을 드러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승객을 항공기에 태우고 장시간 기다리게 하는 것은 좋은 선택이라 할 수 없다. 미국의 경우에도 타막 딜레이(Tarmac Delay, 승객을 태우고 이륙하기까지 지연되는 것)가 장시간 지속되지 않도록 법적으로 제한을 두고 있다. 만약 승객이 탑승한 채로 4시간 이상 이륙하지 못할 상황이면 그 이전에 터미널로 되돌아와 승객을 하기시키거나 항공기 문을 연채 음식물 등의 편의를 제공하도록 되어있다.

얼마 전 우리나라 정부도 항공 서비스 개선을 위해 일정시간 출발이 지연되는 경우 미국에서와 유사한 방식의 제한을 검토하기로 결정해, 머지 않아 법적인 실행이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 왜 지금은 눈이 올 때 항공기에 승객을 태우고 장시간 기다리게 하는 걸까? 제설작업(De-icing) 때문이라고는 하는데 항공기에서 눈을 제거하는 것하고 승객을 장시간 기내에 기다리게 하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걸까? 눈이 내리면 공항, 항공기에는 어떤 일이 발생하고 있는 것일까?

 

항공기에 쌓인 눈은 반드시 제거해야... (제설, De-icing)

일정량의 눈이 내리면 항공기는 반드시 동체와 날개에 쌓인 눈을 제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쌓인 눈이 얼어 붙으면서 항공기 이륙에 필요한 양력을 감소시켜 이륙이 불가능해 진다. 양력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플랩, 승강타 등 조종면(Control Surface)이 얼어붙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항공기 날개 등이 얼어 붙거나 눈이 제대로 제거되지 않아 양력 부족 혹은 조종면 결빙으로 인해 발생한 항공사고가 적지 않다.

[항공상식] 비행기에 쌓인 눈, 꼭 치워야 할까?

icing.jpg

 

 

 

활주로의 눈을 치우지 않으면 이착륙 불가

항공기 날개, 동체의 눈을 제거했다. 그러면 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현대의 항공기가 이륙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속도로 달려 날개 및 동체에 양력을 발생시켜야 하기 때문에 이에 충분한 활주거리를 확보해야 하며, 이를 위한 공항시설이 바로 활주로다.

문제는 활주로에 눈이 쌓인 경우다. 물론 활주로에 눈이 쌓여도 항공기는 제트 (혹은 터보프롭) 엔진의 힘을 바탕으로 질주할 수 있다. 하지만 항공기는 엔진 하나가 멈추는 등의 상황에 대비해 언제든지 멈춰설 준비를 해야 하고, 이에 필요한 제동거리 역시 요구된다. 하지만 눈이 쌓이면 이 제동거리를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비행기의 활주능력과는 별개로 제동거리 확보를 위해 눈은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runway_snow.jpg

 

대개 이 경우 활주로 이착륙을 금지시키고 일정시간 눈을 치운다. 빠르면 20-30분, 늦으면 그 이상이 걸리기도 한다. 하지만 눈이 다량으로 내리는 경우 쌓이는 속도를 감당하지 못해 불과 비행기 한 두대 이륙하고 나서는 또 다시 폐쇄하고 눈을 치운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한 시간에 불과 비행기 몇 대만 이착륙하는 극단적인 상황이 돼 버린다.

 

 

제설/제빙작업(De-icing)을 위한 이동과 순서를 기다림은 인내를 요구해 

제설작업(De-icing)은 항공기가 터미널에 주기해 있을 때 실시하기도 하지만 최근 대부분 공항에서는 별도의 제설/제빙 전용 작업장(Workspace)으로 이동해 실시한다. 이 작업장으로 이동하는 도로(유도로, Taxiway) 역시 제설작업이 필요하고, 작업장에 도착해서도 작업 순서를 기다려야 한다. 작업장까지 이동하는 시간, 그리고 짧으면 10여분, 길게는 1-2시간의 대기시간도 예사처럼 벌어진다. 특히 제주처럼 눈이 많이 오지 않는 지역 공항은 그 전용 작업장은 부족하고, 제설이 필요한 항공기는 밀려들어 제시간에 소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de-icing_1.jpg

 

제설작업 다 끝나고 났는데, 활주로가 제설작업 중이라면 또 기다려야 하고, 만약 잘못 꼬이면 방빙액(Anti-icing Fluid) 유지시간(Holdover time)을 초과해 버려 다시 항공기 제설작업 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뭐 이 정도 되면 항공기 운항은 포기해야 하는 상태가 된다.. 다시 제설작업하고 이륙 대기까지 또 그만큼의 시간이 걸리겠으니 말이다...(주1)

 

 

그렇게 오래 걸린다면 제설작업을 미리하고 나서 승객을 태우면 안되나?

이런 불만도 나올 수 있다. 왜 승객을 태우고 나서 제설작업을 하는가? 미리 작업하고 나서 승객이 탑승하고 출발하면 되지 않는가?

제설작업은 대개 방빙작업(Anti-icing)도 동반한다. 즉 눈/얼음을 제거한 다음 다시 눈이 쌓이거나 얼지 않도록 추가 작업을 한다. 문제는 이렇게 방빙작업을 한다해도 유지시간(Holdover time)이 있다는 점이다. 사용하는 약품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그 시간이 1시간을 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방빙작업까지 완료한 항공기를 다시 터미널로 끌고 오고, 화물을 탑재하고, 승객을 태워 출발해야 하지만 이 시간(Holdover time)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승객을 탑승시키고 출발 준비를 완료한 다음, 제설/제빙작업을 실시하는 것이다.

 

window_snow.jpg

 

 

그렇게 오래 걸릴거라면 미리 항공편 취소해야 하는 것 아닌가?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승객을 기내에 태우고 3-4시간, 심지어 6시간을 잡아두는 것은 문제 아닌가? 차라리 미리 결항(취소, Cancel)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 아닌가?

맞다. 그렇게 미칠 것 같은 답답함과 고통을 주는 장시간 기내대기는 없어야 한다. 미리미리 결정하고 조치해야 한다. 다만 얼마나 오래 걸릴지를 짐작하고 예상 가능함이 전제되어야 한다. 앞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활주로 눈을 치우는 문제부터 시작해 제설 작업장에서의 대기시간 등은 전적으로 눈이 얼마만큼 더 지속적으로 내리느냐에 따라 결정되지만, 이 강설을 예측하고 그에 따른 소요시간을 판단하기는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또한 한 비행기에 탑승한 사람들의 이해관계는 각양각색이다. 어떤 사람은 장시간 기다려서라도 이륙하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는 반면, 장시간 기다리느니 미리 결항(취소, Cancel)결정을 하고 숙소로 돌아가 쉬겠다는 사람들도 있다. 법적으로 제한이 없는 이상 항공사 입장에서는 가능한 비행기를 출발시키는 편이 승객을 위해서도 자사 항공편 스케줄 운용을 위해서도 최선의 방법이라 여길 수 밖에 없다.

 

flight_cancel.jpg

 

후자 요구를 위해 항공편 결항 결정을 일찍 내리면 전자 요구를 가진 승객들은 불만을 제기할 수 밖에 없다. 특히 주변의 다른 항공기가 한두 편이라도 출발하는 상황이면 그 결항 결정에 따른 비난은 온전히 항공사가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우리나라도 타막 딜레이에 대한 법적 제한을 적용해야..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미국에서는 항공기에 승객을 태우고 4시간 이상 출발하지 못할 상황이면 무조건 터미널로 되돌아 오도록 강제하고 있다. (물론 이 경우 대부분 항공기들은 결항 결정으로 이어진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 이런 제한사항이 없기 때문에 항공사들은 조기 결항결정에 따른 비난을 감수하기 두려워 가능한 운항하는 쪽으로 노력한다. 문제는 이렇게 5-6시간 대기하다가 출발하면 다행이지만 결국 출발하지 못하고 중단(취소)되는 상황으로 이어지면 승객들은 폭발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런 불가항력적인 기상 상황 등에서 승객의 불편을 최소화하고 항공사의 합리적 운영을 위해서 법적인 가이드라인이 필요한 시점이다. 미국 등과 같이 4시간 이상 지연이 예상되는 경우 터미널로 되돌아오거나 언제든지 원하는 승객이 하기할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해야 하는 방향으로 검토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한 사람이라도 하기하면 보안절차 상 탑승했던 모든 승객이 하기해야 하고 보안검색을 다시 실시해야 하므로 현실적으로는 결항 조치로 이어질 수 밖에 없기는 하다.)

 

자연의 힘 앞에 인간은 참 미약하다. 아무리 하늘을 나는 물건을 만들고 지구 건너편으로 하루 만에 이동하는 시대가 되었어도, 불과 10여 센티미터 밖에 되지 않는 눈(Snow)에 수 만명의 발길이 묶이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이런 불편 또한 사람의 생명을 보호하고 안전하게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절차와 기준임을 기억해야 한다.

 

[관련 항공상식] 기상 악화, 항공기는 어떤 기준에 의해 취소되나?

 

 


(주1) 기사를 보니 6시간 기내 대기했다는 내용이 바로 이 상황과 유사해 보인다.

"23일 오전 11시30분 부산행 에어부산 비행기에 탑승했던 한 승객을 만났다. 11시50분에 비행기에 탑승했는데, 제빙작업을 한다기에 그 상태 그대로 4시간을 기다렸단다. 이미 일본은 왕복으로 다녀왔을 시간이다. 그러더니 비행기가 활주로로 이동했다. 오랜 기다림 따윈 눈 녹듯 사라지려는 찰라, 비행기는 다시 활주로 위에 우두커니 멈춰 서버렸다. 그리고 1시간 30분이 더 흘렀다. 공항에서 ‘모든 항공편 결항’공지가 방송되고 나서야 비행기에서 나올 수 있었다. 그는 ‘희망고문’에 시달리며 6시간이나 좁아터진 비행기 의자에 앉아 있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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