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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취호]], [[서해호]]를 제작했던 조경연 소령이 개발해 1957년 3월 시험 비행에 성공한 [[비행기]]다.
[[해취호]], [[서해호]]를 제작했던 조경연 소령이 개발해 1957년 3월 시험 비행에 성공한 [[비행기]]다.


춘천 육군항공대에서 발견한 L-19 엔진 4개를 획득한 그는 이 엔진으로 제해호(SX-3), [[통해호]]([[SX-5]])를 제작했다.
춘천 육군항공대에서 발견한 L-19 엔진 4개를 획득한 그는 이 엔진으로 제해호(SX-3), 통해호(SX-5)를 제작했다.


제해호는 당시까지 만든 비행기 가운데 가장 큰 기체로 6명까지 탑승 가능한 중형급이었다. 무기도 탑재해 공격할 수 있었던 제해호는 엔진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부품, 기체를 해군이 직접 만들어냈다. 제해호 명칭은 이승만 대통령이 부여했다.  
제해호는 당시까지 만든 비행기 가운데 가장 큰 기체로 6명까지 탑승 가능한 중형급이었다. 무기도 탑재해 공격할 수 있었던 제해호는 엔진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부품, 기체를 해군이 직접 만들어냈다. 제해호 명칭은 이승만 대통령이 부여했다.  

2021년 4월 9일 (금) 22:16 판

제해호

SX-3 제해호

해취호, 서해호를 제작했던 조경연 소령이 개발해 1957년 3월 시험 비행에 성공한 비행기다.

춘천 육군항공대에서 발견한 L-19 엔진 4개를 획득한 그는 이 엔진으로 제해호(SX-3), 통해호(SX-5)를 제작했다.

제해호는 당시까지 만든 비행기 가운데 가장 큰 기체로 6명까지 탑승 가능한 중형급이었다. 무기도 탑재해 공격할 수 있었던 제해호는 엔진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부품, 기체를 해군이 직접 만들어냈다. 제해호 명칭은 이승만 대통령이 부여했다.

시험비행에 성공한 후 1957년 7월 첫 항공부대인 함대항공대가 창설됐다. 이 해군함대항공대에 소속된 제해호는 남해안 일대 해상 감시, 함정 엄호, 대공 훈련 지원, 함포 탄착 수정, 긴급 수송 등 본격적인 함대 작전에 참여했다.

비행기 기체를 추가 제작하려 했지만 미군의 입장 때문에 무위로 돌아갔다. 한국전쟁 후 미국의 지원으로 연명하다시피 했던 한국이 자체 제작한 항공기 체계에 대해서는 병참 지원이 어렵다는 미군의 입장으로 인해 항공기 추가 제작을 포기했고 제해호 역시 해경으로 이관하면서 해군함대항공대도 1963년 1월 해체됐다.

해경으로 이관된 제해호는 1964년 2월 27일, 임무 중 실종되었다. 해무 때문에 방향을 잃고 연료가 고갈돼 조난을 당했다. 72시간 동안 표류했다가 일본 어선에 의해 발견됐다. 승무원은 모두 무사했지만 이 비행기는 장시간 표류로 부식되면서 파손돼 버렸다.

참고

[[]] , [[]]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