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을 취소할 수 있습니다. 이 편집을 되돌리려면 아래의 바뀐 내용을 확인한 후 게시해주세요.
최신판 | 당신의 편집 | ||
13번째 줄: | 13번째 줄: | ||
==생애== | ==생애== | ||
전라북도 고창에서 태어난 그는 1922년 3월 25일 3등 비행기조종사 면허를 취득한 후 일본으로 유학해 1923년 일본 오구리비행학교, 1924년 도아비행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1927년 2등 비행기 조종사 면허 | 전라북도 고창에서 태어난 그는 1922년 3월 25일 3등 비행기조종사 면허를 취득한 후 일본으로 유학해 1923년 일본 오구리비행학교, 1924년 도아비행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1927년 2등 비행기 조종사 면허 츼득, 1932년 12월 다치가와 육군비행학교를 수료해 1등 비행기 조종사 면허를 취득했다.이후 미국 조종학교에서 헬리콥터 조종사 면허도 취득했다. | ||
그는 귀국 후 1929년 조선비행학교를 창립해 교장으로 취임했으며 조선의 청년들을 모집해 비행기술을 교육했다. 여기에서 교육을 받아 양성된 [[조종사]]는 대부분 일본군으로 보내졌고 1936년 조선항공공업사(신항공사업사) 설립해 운영했지만 물자 대부분 일제의 태평양전쟁에 징발되었다. 1942년 조선항공공업을 설립해 비행기를 제작하기도 했다. 1944년 조선항공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해 일본 해군에 비행기를 제작, 납품했다. 전쟁이 끝난 후 이를 군수물자로 간주한 미군에 의해 폐기처분되었다. | 그는 귀국 후 1929년 조선비행학교를 창립해 교장으로 취임했으며 조선의 청년들을 모집해 비행기술을 교육했다. 여기에서 교육을 받아 양성된 [[조종사]]는 대부분 일본군으로 보내졌고 1936년 조선항공공업사(신항공사업사) 설립해 운영했지만 물자 대부분 일제의 태평양전쟁에 징발되었다. 1942년 조선항공공업을 설립해 비행기를 제작하기도 했다. 1944년 조선항공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해 일본 해군에 비행기를 제작, 납품했다. 전쟁이 끝난 후 이를 군수물자로 간주한 미군에 의해 폐기처분되었다. | ||
37번째 줄: | 37번째 줄: | ||
{{각주}} | {{각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