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 편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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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치권은 이 사건을 외교적, 정치적으로 이용하며 다양한 분야에서 레이건 정부에 큰 이득을 안겨줬다.
미국 정치권은 이 사건을 외교적, 정치적으로 이용하며 다양한 분야에서 레이건 정부에 큰 이득을 안겨줬다.


0007편 희생자 유족들은 1993년 ICAO 최종보고서에서 밝혀진 조종사 과실에 대한 책임을 물어 서울지방법원에 대한항공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지만 [[헤이그 의정서|헤이그협약]]에 따라 손해배상채권 시효 2년이 지나 소송에서 패소했다. 이전에 대한항공과 유족간 합의(인당 10만 달러 보상)가 있었던 점이 패소에 큰 영향을 주었다. 1992년 LA연방법원에 제기한 소송에서는 11명 희생자 가족이 모두 2,100만 달러를 배상 받았다.  
0007편 희생자 유족들은 1993년 ICAO 최종보고서에서 밝혀진 조종사 과실에 대한 책임을 물어 서울지방법원에 대한항공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지만 헤이그 협약에 따라 손해배상채권 시효 2년이 지나 소송에서 패소했다. 이전에 대한항공과 유족간 합의(인당 10만 달러 보상)가 있었던 점이 패소에 큰 영향을 주었다. 1992년 LA연방법원에 제기한 소송에서는 11명 희생자 가족이 모두 2,100만 달러를 배상 받았다.  


소련은 당시 정치적으로 매우 혼란한 시기였고 이 사건을 냉전시대에 조종 발생했던 격추사건 정도로 치부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국제사회가 이를 크게 다루기 시작했고 미국에 이어 일본이 감청한 소련군 교신 내용을 공개하자 국제적인 비난에 직면했다. 이 때문에 미국과 일본은 냉전시대 정보전에서 도감청 능력과 기회를 크게 잃게 됐다.
소련은 당시 정치적으로 매우 혼란한 시기였고 이 사건을 냉전시대에 조종 발생했던 격추사건 정도로 치부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국제사회가 이를 크게 다루기 시작했고 미국에 이어 일본이 감청한 소련군 교신 내용을 공개하자 국제적인 비난에 직면했다. 이 때문에 미국과 일본은 냉전시대 정보전에서 도감청 능력과 기회를 크게 잃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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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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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항공사고]]
[[분류:대한항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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